쌍용구곡(雙龍九曲)
우리나라 땅은 산세가 수려해서 용이 많다. 깊은 골짜기에는 으레 용추가 있고, 인근 예천에는 용궁이 있고, 바다에는 용왕님이 계시고, 나라에는 용포를 입은 임금님이 계셨다. 같은 용이라도 서양의 용인 드래건은 악의 화신으로 사람을 두렵게 하는 반면, 우리의 용은 너무나 영험한 나머지 숭모의 대상으로 가깝기만 하다. 어쩌다가 조상 덕에 용꿈을 꾸기라도 하면 이게 웬 떡인가 싶어, 남이 알세라 아무도 몰래 얼른 로또를 사야했다. 이렇듯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용은 전설속의 동물로 사람들이 경외하는 신성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용은 주로 왕이나 황제들과 친하다. 황색의 곤룡포를 펄럭이는 임금님의 모습은 그 자체가 위엄이고 권위였다. 또한 세종대왕의 명으로 조선 건국의 위업을 칭송한 서사시 용비어천가는 내용은 차치하고 이름만 들어도 용트림하는 용의 느낌을 받는다. 그럼에도 쌍룡하면 ‘용용 죽겠지’하는 불손한 말이 떠오른다. 누굴 약 올릴 때나 놀려먹을 때 하는 말인데도 불구하고, 강강 수월레나, 낭낭 십팔 세 처럼 연이은 이응소리에 가락이 붙어서 그런 것 같다. 이때의 용용은 우리의 쌍룡과는 무관하다. 어쨌거나 화룡점정으로 완성된 龍은 민간에서는 비바람을 부르고 하늘을 오르내리는 신비스런 동물이자 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 영험한 힘을 받기 위함인지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 책사 제갈량의 호는 와룡선생이고, 조운은 그의 자를 자룡이라 하여 조자룡으로 불렸고, 전라도 쪽의 춘향과 이몽룡은 지고한 사랑의 화신이 되었다. 다들 용이란 글자 때문인지 걸출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용은 어디서 왔을까, 어떤 이는 악어에서 왔다고 했고, 또 다른 이들은 용오름처럼 기상현상을 보고 만들어냈다고도 했다. 용처럼 상상력을 자극하고 문화적으로 영향력이 큰 동물도 없는 것 같다. 그런 용이 쌍으로 있는 곳이 바로 쌍룡계곡이고 쌍룡구곡이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선인들의 눈에는 둘레의 산들이 용의 모습을 하고 있거나, 용의 기운이 서려 있는 것을 보고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겠다. 오늘 쌍룡을 노래한 화운의 시를 통해 쌍룡이 노닐던 곳 쌍룡구곡을 일별해 보고자 한다.
화운華雲 민우식閔禹植(1885~1973)은 농암면 내서리 도장산 기슭의 약 4㎞에 걸쳐 전개되는 곳에 쌍룡구곡을 설정하고 경영을 했다. 그는 관직에 나간 적이 없으며 학문에만 전력한 사람이라고 전해진다. 명예와 권세와 물욕이 없는, 어찌 보면,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고결한 인물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달리 보면 입신양명의 출세와 사나이로서 야망과 꿈을 포기한 산림거사와 같은 은둔 인물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남들이 하지 않고, 하지 못한 구곡을 홀로 개척한 것은 분명하고, 이는 구곡문화에 크게 공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제3곡 우연에 자기 아버지를 위하여 四友亭을 짓고, 高山ㆍ流水ㆍ明月ㆍ淸風의 사우와 더불어 한가로운 삶을 살아간 효심 가득한 처사였다. 쌍룡구곡이 타 구곡과 다른 점은 두 시내에 걸쳐 설정되었다는 점이고, 화운은 제1곡에서 제6곡까지는 쌍룡천에, 제7곡에서 제9곡까지는 내서천에 설정하였다. 그는 아래 서시와 쌍룡구곡시를 지어 후세에 전하고 있다.
一幅龍岡四友亭 (일폭용강사우정) 한 폭의 그림 같은 용강 사우정에
三山會合兩溪濙 (삼산회합양계영) 세 산 모여 두 시내 빙 돌아감아 가네
此地溪山藏九曲 (차지계산장구곡) 이 땅 산과 시내가 아홉 굽이를 감추니
天敎形勝最丁寧 (천교형승최정녕) 하늘이 경치를 가장 아름답게 하였구나
여기서 세 산이란 道藏山, 佛日山, 靑華山이고, 두 시내란 내서천과 쌍룡천을 말한다. 이 시에서 “쌍룡구곡의 지형을 파악할 수 있다”는 말씀(문경구곡원림의 특징과 활용방안, 쌍룡구곡과 입도차제 편, 143쪽)도 있지만, 행간의 의미를 살펴보면「수려한 경치를 노래한 것」일 수도 있겠다. 바로 사우정이 그렇다. 한 폭의 그림 같다는 것은 뒤로는 산기슭에 닿아 있고, 앞으로는 면경 같은 냇물이 있는 것을 말하고, 이는 말 그대로 그림이다. 게다가 은은한 달빛에 비친 수면의 사우정은 이미 고산이고 유수이고 명월이며 청풍이 되어 떠 있다. 세 산과 두 시내는 단조로운 직선이 아니라 빙 돌아 굽이굽이 흘러가고, 굽이 또한 벗은 듯 입은 듯 산세에 숨은 듯이 있다. 얼마나 아름답고 빼어났으면 하늘로 하여금 그 아름다움을 인정하게 하였을까. (* 濙영=水流回旋貌)
제1곡 입문(入門)
一曲來由入道門(일곡래유입도문) 일곡이라 도의 문에 들어가니
兩邊峭壁路中昏(양변초벽로중혼) 가파른 양쪽 절벽에 길은 어둡고
行行立脚進無已(행행입각진무이) 가다서다 가기를 그치지 않으니
次第前頭自有源(차제전두자유원) 앞으로 나가면 자연히 원두가 있으리
화운은 입문이란 도에 발을 들여다 놓는 곳이라고 했다. 이는 구곡에 첫발을 내디디는 뜻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겠다. “次第”란 말처럼 순서대로 간다면 결국 1곡을 지나 9곡까지 갈 수 있고, 또한 그침이 없고, 과정이 지난해도, 체념하지 않고 나아가다보면 유자가 지향하는 극처, 원두가 있다고 했다. 이 시의 내용은 시련을 견디면 극처에 닿을 수 있다는 희망과 굳건한 정신 무장을 요구하는 듯이 보인다.(* 峭초=高峻, 峻阪)
제2곡 지도석(志道石)
쌍룡교가 생기기 전에 그 자리에 우뚝 솟은 바위가 있었고, 그 바위 모습이 ‘도에 뜻을 둔 형상’을 하고 있어 지도석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이 말을 두고 생각을 좀 해봐도 쉽사리 그 형상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바위의 형상이 어떠했길래, ‘도에 뜻을 두었다’고 생각을 했을까. 거북을 닮았다면 거북바위가 되었을 테고, 배들 닮았다면 배 바위가 되었을 텐데, 손에 쥘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추상적인 관념인 “뜻”을 형상화한 돌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고 보고 싶었다. 아무래도 지도석이 이런 분야에서 처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범인은 감히 생각도 못할 발상을 한 화운은 어떤 모습을 하고 계셨던 분이실까 보고 싶어졌다. 아마도 도를 갈구하는 화운의 생각과 횡류를 가로막고 서있는 돌과는 운명적인 조우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주춧돌을 본 순간, ‘저 돌 또한 도를 향해 저렇듯 서있구나.’ 공감이 志道가 되었고, 마침내 이름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쉽게도 다리 공사로 인해 파괴되어 현존하지 않는다고 했다. 도에 뜻을 둔 형상이 어떤지 여전히 궁금할 뿐이다.
二曲峭然支道石 (이곡초연지도석) 이곡이라 높다란 지도석이
橫流截立定如石舃 (횡류절립정여석) 횡류를 막아서니 마치 주춧돌 같구나
飛淙奔瀑時相過 (비종분폭시상과) 휘날리는 물소리 힘찬 폭포수 지나가는데
猶不回頭去益白 (유불회두거익백) 물머리 돌리지 아니하고 흘러가니 더욱 희구나
石舃 은 주춧돌이란 뜻이다. 주추(↼柱礎)란 기둥 밑에 괴는 물건이고, 주춧돌은 주추로 괸 돌, 곧 초석을 말한다. 그렇다면, 2곡에서 횡류는 무엇에 막혀 물보라를 치고 있을까. 추춧돌 같은 지도석이 막아섰다고 한다. 지도석이 상징하는 것은 고난에 동요 없이 꿋꿋이 대처하는 표석이고 도를 향한 돌인 것이다. 도에 입문해서 나아가는 유자는 어려움을 뒤로하고 지도석처럼 굳세어야 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 石舃 석 =柱下石/ 淙종=水聲, 水流貌)
제3곡 우연(于淵)
于자는 語助辭로 쓰인다. 별 뜻이 없고 다른 글자를 돕기만 하는 역할을 한다. 간혹 ‘~에, ~에서, ~구나, 아!, 까지, 가다. 하다.’ 등의 쓰임이 있기도 하다. 우연을 굳이 해석하자면, ‘연못에,’ ‘아! 깊은 못(소)’ 등으로 새겨볼 수도 있겠다. 여기 우연은 화운이 명월청풍과 고산유수를 즐기며 지내던 사우정이 있는 곳이고, 淵은 인공 못이 아니라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라고 했다.
三曲于淵一鏡磨 (삼곡우연일경마) 삼곡이라 우연은 닦아놓은 거울 같고
天然古石自成窩 (천연고석자성와) 오래된 돌들은 절로 움집으로 되었고
浪息風怗春日暖 (랑식풍첩춘일난) 물결 잠자고 바람 고요한 따뜻한 봄날에
魚群閃悤任委他 (어군섬총임위타) 고기 떼 잠깐 보이며 한가로이 노닌다
우연은 면경이 아니라 석경 같은 곳이다. 센 물살에 돌이 갈리고 닦여 마치 거울 같이 빛나는 곳이라고 한다. 그 돌들이 우연을 에워싸고 있어 그 형상이 마치 움집 같이 보이고, 오래된 돌 틈새는 물고기들의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고, 산에서는 산짐승들의 안전한 거처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바람 고요하여 물결 잠자는 곳에 따뜻한 봄볕이 비추고, 포근한 오후에 고기들이 떼 지어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 것만 같다. 화운이 여기에서 물고기를 들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한가롭게 유영하는 물고기는 누가 시켜서 노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속을 오가는 것은 물고기 자신의 본성에 따른 것이고, 이런 현상을 도가 구현되는 천리의 유행, 곧「하늘의 이치가 물 흐르듯이 퍼져나가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마도 화운이 생각하기로는 사물이나 생물이나 다들 나름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본성이 바탕이 되어 도를 구체화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아닐까 유추해볼 따름이다. (* 怗첩=靜也/ 悤총=怱, 急遽)
제4곡 여천대(戾天臺)
옛날에 여천대 위에 쌍룡사가 있었다고 한다. 절이 들어선걸 보면 산세는 넉넉하고 좋았을 것 같다. 여천의 의미는 ‘하늘에 이름’, ‘날아서 하늘에 닿음’이라는 뜻이고, 여천대란 ‘산이 높아 하늘에 닿는 演壇이나 演臺’란 뜻으로 새길 수 있겠다.
鳶飛戾天 (연비려천)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고
魚躍于淵 (어약우연) 물고기는 연못에서 노닌다.
豈弟君子 (기제군자) 평안함을 즐기는 군자여
遐不作人 (하불작인) 어찌 사람을 진작시키지 아니 하리
솔개가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연못에 뛰노는 것은 그들의 본성이다. 본성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하늘의 이치인 천리이다. 천리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솔개나 물고기처럼 자신의 본성에 따르는 것이 바로 천리이다. 이는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런 것이 되어 자체로 편하다. 그래서 본성에 맞아야 편안한 것이고 편안해야 천리가 되는 셈이다. 군자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에 화락하고 편했다. 이를 개제豈弟라고 표현했다. (* 豈=①개樂也, 愷也/ ②기焉也/ 豈弟개제: 용모나 기상이 단아하고 화락하다.)
여천이란 詩經 大雅 旱麓한록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위는 4언 시로서 2구와 4구, 우수구의 운이 맞고, 1구와 2구가 댓구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시에서 솔개가 하늘 높이 까마득히 떠 있어 마치 하늘에 닿을 것 같다고 한 것은 그만큼 여천대 위의 산세가 험하고 높다는 것을 말한다.
四曲戾天千尺臺 (사곡려천천척대) 사곡이라 하늘에 닿을 듯한 높은 누대에
無人曾昔到最嵬 (무인증석도최외) 일찍이 가장 높은 이곳에 이른 이 없어라
惟有巢鳶能識性 (유유소연능식성) 보금자리 튼 솔개만이 그 본성을 알아서
長風九萬任飛回 (장풍구만임비회) 먼데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빙빙 날아돌고 있네
물고기는 창공을 날 수 없고, 솔개는 물속에서 살 수가 없다. 이는 그들의 본성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3곡에서는 물고기를, 4곡에서는 솔개를 통해 본성을 말하고 있다. 화운은 이 처럼 물고기나 솔개가 본성대로 하듯이, 이 본성이 하늘의 뜻인 천리임을 강조하고 있다. (* 嵬외=高峻貌/ 任임=聽憑: 내버려 두다. 되는 대로 맡겨 두다.)
제5곡 방화동(放化洞)
방화동은 무이구곡의 5곡 무이정사와 같은 곳이다. 洞이란 골짜기나 동네를 뜻하고,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방화동에서 방이란 ‘풀어 놓다’ 이다. 뭔가 구속하고 있던 상태에서 해제되어 풀어놓는 의미가 있다. 化란 ‘모양이 바뀌고, 교화가 되고, 상태가 바뀌어 가는 것’을 뜻한다. 사상이나 이념 등은 물론 물질의 화학적 변화나 새로워짐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화란 ‘변함’을 뜻한다 하겠다. 본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르침을 받아야하고, 이를 통해 느끼고 생각하고 깨달아서, 끝내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게 된다. 이전의 상태와 다른 ‘化’인 것이다. 시야를 흐리는 속세의 묵은 때를 배움을 통해 새롭게 변화하는 곳이 바로 방화동이다.
五曲超然放化洞(오곡초연방화동) 오곡이라 초연한 방화동에
拔乎其萃出乎衆(발호기췌출호중) 가려 뽑아 무리에서 뛰어 나네
屈指幾人能到斯(굴지기인능도사) 손꼽아 봐도 몇 사람이 여기 도달할까
乾坤寂寂醉長夢(건곤적적취장몽) 하늘 땅 고요하니 긴 꿈에 취하여라
민가들과 떨어져 오롯이 있는 방화동은 다른 어느 동네보다 뛰어난 곳이라고 했다. 왜 그렇게 여겼을까. 몇 사람이 안 된다고 했다. 아무리 손꼽아 봐도 방화동까지 올 사람이 거의 없다고 여긴 것이다. 그리고는 하늘과 땅조차 방해하지 않는 적적寂寂한 곳, 곧 조용하고 쓸쓸한 방화동에서 느긋하게 쉬어보자고 했다. 어떻게 쉴까. 긴 꿈에 취해보자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마음을 풀어 놓고放, 그 방심放心을 통해 새롭게 변화해보자는 뜻은 아닐까. 화운은 아무도 구속하지 않는 자유로움 속에서 스스로 교화되고 깨닫게 되는 경지를 방화동에서 체득하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 萃췌ㆍ취=聚也, 類也/ 寂적=靜也, 靜止, 寞也)
제6곡 안도석(安道石)
안도를 ‘편안하게 마음을 놓는다.’는 安堵로 알았다. 여기서는 ‘도에 편안하다.’는 뜻으로 安道라고 했다. 안도란 ‘도에 편안하다.’란 의미인지, ‘도 자체가 편하다.’는 뜻인지는 분간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화운이 생각한 것은 아마도 전자일 것 같다. 왜냐하면 여기 쓰인 대로 안도석 주변은 바위로만 되어 있는 돌산이고, 사람들이 오르기에 가파른 벼랑이라고 했다. 일단 그런 산꼭대기에 올랐다면 성취감에 기쁘고 편하지 않을 까닭이 없을 것이다. 같은 이치로 도의 세계에 이르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六曲迂然安道石 (육곡우연안도석) 육곡이라 저 멀리 안도석이 있고
中流截特百千尺 (중류절특백천척) 내 가운데를 가로막아 높이 솟아 있네
休說而今高莫攀 (휴설이금고막반) 지금 높아 오르지 못한다 말하지 말라
由門進道可追跡 (유문진도가추적) 문에서 나아가면 도를 찾을 수 있으리
천리를 궁구하는 것도 호락호락한 일은 아닌데, 실행하는 과정이야 오죽하겠나. 쉽사리 될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3연에서 休說而今高莫攀, 오르지 못함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 굳센 정신력을 강조하고 있다. 구곡의 궁극은 극처이며 화운이 찾는 길 또한 그 길이다. 비록 안도석이 내 가운데를 막고 서 있어도, 가는 길을 알게 되면 도에 편안하다고 한다. 어쨌든 도의 과정은 험난하기만 한 것 같다. (* 截절=遮斷, 조阻也)
제7곡 낙경대(樂耕臺)
낙경대란 ‘즐겁게 밭을 가는 곳’이라고 한다. 그 당시 刻石된 낙경대 너머에는 밭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耕자가 들어갔을 것이다. 농사란 권력과 관직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런 권세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농사에 있다. 몸을 움직여 경제를 해결하는 사람들, 평범한 삶 속에서 참다운 도를 추구하는 사람들, 어쩌면 이들 모두가 도에 근접한 사람들이다.
七曲躬耕樂此臺(칠곡궁경락차대) 칠곡이라 허리 굽혀 밭 갈고 이 대에서 즐기니
柿桑豆菽雨初栽(시상두숙우초재) 감나무 뽕나무 콩을 오는 비에 가꾸고
鋤罷南山歸臥夕(서파남산귀와석) 남산에서 김매고 돌아와 저녁에 누우니
兒孫環匣讀書催(아손환갑독서최) 아이들이 책상에 둘러앉아 책 읽기를 재촉하네
농부로서 소박한 삶이다. 그림이 그려지고 떠올릴수록 정겹다. 구곡까지 가기가 싫어졌다. 시를 음미하며 이대로 퍼질러 앉아 놀고 싶다. 내 맘과 달리 시가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것 같다. 첫 구에 궁경이 나온다. 藥泉 남구만의 시조에도 밭가는 이야기가 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은 언제 갈려 하나니.” 해는 중천인데 일꾼은 꿈속을 헤맨다. 약천도 그러했지만 농사는 때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화운도 그랬을 것이다. 사래 긴 밭, 長田을 갈고서는 ‘아이고, 허리야’ 하곤 낙경대에 오른다. 허리를 쭉 펴고, 갈아 놓은 밭고랑을 굽어보니, 한 눈에 들어온다. ‘아따, 내가 해도 많이도 했네,’ 그 생각이 들자 스스로가 대견하고 뿌듯하다. 미소가 번져 웃음이 되어 나온다. 이제는 하늘이, 단비가 농작물을 관리한다. 비 따라 몰라보게 쑥쑥 큰다. 땀과 정성이 빗속에서 영글고, 저녁 밥상은 꿀맛이다. 노곤하여 쉬려고 할 때쯤이면, 종일토록 못 본 아버지가 반갑다. 어제 읽은 책을 들고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온다. 눈앞에서 헤어진 책을 흔든다. “또 읽어 조요”, 조르는 아이가 사랑스럽다. 화운의 삶이 이렇다면 이것이 곧 樂耕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 鋤서=治田)
제8곡 광명암(廣明巖)
화운이 광명암이라고 명명한 것은 쌍계(내성천+쌍룡천)수석雙溪水石과 청풍명월ㆍ고산유수의 삶을 자신에게 그치지 않고 더욱 넓게 밝히고자 이 굽이의 이름을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곳에 와서 자신의 감회를 시로 읊었다.
八曲奇巖廣且明(팔곡기암광차명) 팔곡이라 기이한 바위는 넓고도 밝으니
水澄魚躍兩相情(수징어약양상정) 맑은 물과 뛰는 물고기 둘이 서로 정겹네
風雲魚水誠非偶(풍운어수성비우) 바람ㆍ구름ㆍ물고기ㆍ물은 우연이 아니니
推廣吾明利衆生(추광오명이중생) 나의 명철 넓혀 가서 중생을 이롭게 하리
넓적하고 이상한 형상의 바위가 빛깔 또한 밝은 것으로 보아 8곡 주위의 경관이 빼어난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징澄’이란 낱말로 새하얀 바위에 비친 시냇물을 그려냈다. 화운은 그 냇물에 노니는 물고기와 수면에 비치는 하늘과 구름을 보고는 이를 ‘수징어약, 풍운어수’란 말로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명징한 물에 고기가 뛰는 것은 정겨운 일이고, 바람 따라 구름 가고, 물 따라 고기 가는 것이 필연이지 우연은 아니라고 했다. 이 모두가 홀로가 아니라 함께 어울려 존재함을 말해주고 있다. 끝구는 大學章句에서 인용한 구라고 나와 있다.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히는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고, 지극한 선에 머무는데 있다.”는 뜻으로 나와 있다. 여기서 명덕이란 더러워지지 않은 본디의 천성을 말하는 것 같고, 화운은 이를 다른 사람에게도 밝혀 넓혀 나가려고 한 것 같다. (* 親친≑新)
제9곡 홍류동(紅流洞)
쌍룡구곡의 극처인 홍류동이다. 서령교가 있는 굽이의 원래 지명이 홍골인데, 이런 지명을 따서 화운이 홍류동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원래 골이란 ‘고을이나 골짜기의 준말’이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사람이 살던 곳이다. 또한 5곡 방화동처럼 동의 명칭이 들어간 곳 역시 그렇다. 정리하면, 극처인 홍류동은 사람이 살던 평범한 공간이란 말이 된다. 거쳐 온 곡들은 9곡이 있어 성립되기에 기대가 컸었다. 극처 9곡 하면 당연히 어딘가 특별나고 도가 풍기는 은은한 향이라도 나야한다. 그러나 유자에겐 도의 극처란 특별한 공간이 아니라 일상의 삶이 있는 평범한 공간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곡을 표현한 시어들도 늘 우리가 보고 접하는 낯익은 낱말들이다. “산과 시내, 험준한 절벽과 폭포, 잔잔한 물결, 고요한 바람, 따뜻한 봄볕, 한가로운 물고기, 보금자리 튼 솔개, 먼데서 불어오는 큰 바람” 등등 어느 하나 기이한 느낌이 드는 것이 없다. 있다면 붉은 복사꽃이 떨어져 흘러내리는 도원桃園이 연상된다는 점일 것이다.
九曲紅流別有洞(구곡홍류별유동) 구곡이라 홍유에 별천지 동천이 있고
挑花春水謝塵鬨(도화춘수사진홍) 도화와 춘수는 티끌과 시끄러움을 허락하지 않네
始焉出岫終知還(시언출수종지환) 아침에 굴을 떠나 저녁에 돌아옴을 알고
獸有麒麟鳥有鳳(수유기린조유봉) 길짐승엔 기린 있고 날짐승엔 봉황 있네
홍류동이란 별천지가 있고, 복사꽃과 얼음 녹은 물이 속세의 번잡하고 떠들썩한 것을 거절하고, 신령스런 동물들도 아침을 맞고 저녁을 마무리하는 순리를 알고 있다고 했다. 어찌 보면 극처인 9곡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평범한 곳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도연명의 무릉도원이 이런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謝사=拒絶/ 鬨홍=喧鬧훤뇨/ 岫수=山有穴) 끝.
* 자료정리 손해붕孫海鵬 부회장.
(위 글은 주관적인 관점에서 적은 것으로 내용이나 느낌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참고서적≫
김문기,「문경의 구곡원림」, 문경시, 2004.
문경시,「문경 구곡원림의 특징과 활용 방안」, 문경시,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