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곡

문경의 구곡원림과 구곡시가

선유칠곡(仙遊七曲)

선유동(仙遊洞) 입구의 산기슭에 칠우정(七愚亭)이 자리 한다. 이 정자는 대한제국 시절 가은(加恩) 지방 7인의 벗들이 나이도 서로 가깝고 정의도 도타워서 자주 모임을 가지고 선유동의 산수를 즐겼는데 선유구곡 아래에 칠곡(七曲)을 설정하고 경영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로의 만남을 가지는 장소로 1910년대 망화담 위에 칠우정(七愚亭)을 건립하였는데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剛)이 ‘칠우정(七愚亭)’이라 명명한 까닭은 7인의 벗들이 모두 어리석을 우(愚) 자를 호로 가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가은읍의 선비요 유력한 인사들이었는데 나라를 빼앗기는 시절을 만나 이곳에 은거하며 수련한 것으로 보인다. 우은(愚隱) 김종률(金鐘律), 우석(愚石) 정세헌(鄭世憲), 우초(愚樵) 민순호(閔舜鎬), 우송(愚松) 김정익(金正翊), 우전(愚田) 김정진(金廷鎭), 우포(愚圃) 김양한(金亮漢), 우천(愚泉) 김종훈(金鍾勳).

칠우들이 경영했던 선유칠곡(仙遊七曲)은 다음과 같다.

제1곡 완심대(浣心坮)

선유칠곡은 제1곡인 완심대(浣心坮)에서 시작된다. 완심대는 완장리 마을이 끝나는 지점 좌측 냇가 너럭바위에 제1곡 완심대(浣心坮)란 이름이 새겨져 있다. 계곡이 잡초와 잡목이 우거져 이를 헤치고 접근해야 한다. 그 옛날 망국의 한 달래던 칠우(七愚)들이 마음을 씻고 극처로 들어간 제1곡이다. 칠우정(七愚亭)은 옛날 칠우들이 이곳에 모여서 망국의 한을 달래고 시회(詩會)를 가지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은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칠우대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 위도 : 36° 40´ 13.16´´ • 경도 : 127° 59´ 14.20´´ • 고도 : 220.0m

제2곡 망화담(網花潭)

완심대(浣心坮)에서 30m쯤 시내 위쪽 바위에 ‘망화담’이란 아름다운 글씨가 새겨져 있다. 맑은 시냇물이 흐르며 작은 연못을 만든다. 이 못이 선유칠곡의 제2곡인 망화담(網花潭)이다. 널따란 바위 옆에 세워진 돌에 이끼가 많이 끼어 돌에 새겨진 글씨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이다. 물에 떠있는 꽃들이 많아서 그물질할 수 있는 못이란 의미의 망화담은 봄이면 선유칠곡에 각 굽이의 꽃잎들이 떠내려 와 이곳에 이르러 맴돌지 않았나 여겨진다.

망화담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 위도 : 36° 40´ 13.19´´ • 경도 : 127° 59´ 14.22´´ • 고도 : 227.5m

제3곡 백석탄(白石灘)

망화담(網花潭)에서 시내를 따라 200m 정도 거슬러 오르면 널 다란 흰 바위를 만나게 되는데 이 굽이가 선유칠곡 제3곡인 백석탄(白石灘)이다. 주위에는 나무가 없고 다만 흰 바위들 사이로 맑은 시냇물만 흘러가고 있다. 여름이면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이 굽이를 찾을 만한데 주위에 그늘을 드리울 만한 나무가 없기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찾지를 않았다. 흰 돌들 사이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 바위로 인하여 여울을 만들며 흘러가니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원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그 옛날 칠우 들은 이 굽이에 이르러 망국으로 인하여 가졌던 울분을 삭이지 않았나 여겨진다.

백석탄의 위치는 다음과 같이 측정된다.

  • 위도 : 36° 40´ 14.02´´ • 경도 : 127° 59´ 00.27´´ • 고도 : 238.4m

제4곡 와룡담(臥龍潭)

백석탄(白石灘)에서 300m 정도 물길을 따라서 거슬러 오르면 넓은 바위를 만나는데 이 굽이가 선유칠곡 제4곡인 와룡담(臥龍潭)이다. 바위 위에 새겨진 ‘와룡담’ 글씨는 해서와 초서를 배분하고 조합하여 절묘한 느낌을 준다. 위로부터 흘러내려 오던 시냇물이 이곳에 이르러 큰 못을 이루면서 넘실거려 마치 용이 누워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이 굽이의 이름을 용이 누워 있는 못이라고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공간은 현재 접근이 쉽지 않아 아름다운 경관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이 잘 찾지를 않는다. 접근성을 보장할 수 있는 약간의 공사를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 굽이에 이르러 와룡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와룡담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 위도 : 36° 40´ 16.68´´ • 경도 : 127° 58´ 51.05´´ • 고도 : 245.2m

제5곡 홍류천(紅流川)

와룡담(臥龍潭)에서 50m 정도 물길을 따라서 거슬러 오르면 시내가 굽어 도는 지점에 시내를 가로지르는 바위가 나타나는데 이 바위 위에 홍류천(紅流川)이라 새겨져 있어 이 굽이가 선유칠곡의 제5곡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차게 흘러오던 시냇물이 이 굽이에 이르면 다소 완만하게 흐르게 되는데 이 때문에 흘러가는 물을 시간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다. 홍류는 붉은 물인데 물이 붉을 수는 없으니 이것은 물 위에 붉은 꽃이 떨어져 흘러갔기 때문이다. 물살이 세차게 흘러가면 붉은 꽃잎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이 공간은 물살이 천천히 흘러가기 때문에 붉은 꽃잎들이 물을 가득 메우고 가기 때문에 시내가 온통 붉은 빛을 띨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굽이의 이름을 홍류천이라 하지 않았 나 여겨진다.

홍류천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 위도 : 36° 40´ 76.30´´ • 경도 : 127° 58´ 47.92´´ • 고도 : 245.9m

제6곡 월파대(月波臺)

홍류천(紅流川)을 굽어돌아 약50m 정도 오르면 시내 전체를 덮은 넓은 바위에 이르는데 이 굽이가 선유칠곡 제6곡인 월파대(月波臺)이다. 이 굽이는 선유칠곡의 다른 굽이와 달리 바위가 넓게 자리하고 그 옆으로 시내가 흘러가 대(臺)라는 명칭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비스듬히 자리하는 바위 때문에 이 굽이를 흐르는 시냇물이 완만히 흐르고 있었는데 달이 뜬 밤이면 달빛이 이 물살위에 비치면서 하얀 물결을 이루고 흘러가기 때문에 월파대 라고 이름 한 것으로 보인다. 월파대 바위 위에 앉으니 선유칠곡을 경영했던 칠우 들이 달밤에 이 굽이에 이르러 하얀 물결을 이루며 흘러가는 시냇물을 바라보며 흥에 겨워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월파대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 위도 : 36° 40´ 13.08´´ • 경도 : 127° 58´ 47.62´´ • 고도 : 246.3m

제7곡 칠리계(七里溪)

선유칠곡의 극처인 제7곡은 칠리계(七里溪)이다. 여울이 7리에 걸쳐 있다하여 이름이 붙여진 이 굽이는 선유구곡의 제1곡인 옥하대(玉霞臺)와 인접하여 있다. 옥하대의 위치가 명확하지 않지만 선유칠곡을 경영했던 칠우들은 이곳이 선유구곡의 제1곡이라는 사실을 알았던지 옥하대 아랫부분에 선유칠곡의 극처를 설정하였다. 널따란 바위가 약간의 격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유구곡에서 흘러오는 물이 이 굽이에 이르면 작은 폭포를 이루며 흘러가니 7리를 걸쳐 흐르는 여울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 아쉽게도 이 굽이는 접근이 쉽지 않아 아름다운 경관에 매료되어 오랫동안 머물기도 한다.

칠리계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 위도 : 36° 40´ 09.06´´ • 경도 : 127° 57´ 36.03´´ • 고도 : 246.5m

이를 통해 볼 때 선유칠곡(仙遊七曲)은 도학적 의미를 가지고 경영된 원림은 아니다. 다만 아름다운 경관을 칠곡의 공간을 통하여 경영하며 완상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나라를 잃은 울분을 산수 자연 속에서 삭이며 마음을 수양하였던 것이다. 이들 칠곡을 흔히 신선유구곡(新仙遊九曲)이라 말하지마는 금번 학술조사를 통하여 선유구곡 아래 신선유구곡이 새로 지정된 것이 아니라 칠우정의 주인공인 칠우들이 칠곡을 새로 지정하여 경영했음이 밝혀졌고 또한 이 선유칠곡(仙遊七曲)의 각 굽이의 명칭이 석각되어 있음이 고증 되었다.


<자료출처> 문경문화연구총서 “문경의 구곡원림”(경북대학교 김문기 교수 지음)